5·18 기념행사/언론보도

[제37주년 5·18 릴레이 기고] 오월도, 촛불도, 우리도 박제하지 말라!

5·18행사위원회 2017. 5. 12. 19:03


김신영 조선대 총학생회장


얼마 전 5·18을 맞아 광주 기행을 준비하는 대학생들이 모여 80년 오월을 공부하는 자리가 있었다. 전국에서 광주 기행을 어떻게 준비하는지 궁금한 것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도 일정에 옛 전남도청 답사가 있어서 마음이 끌렸다. 아직 전시 준비가 마무리되지 않은 공간을 우리가 먼저 본다는 설렘도 있었고, 그간 베일에 싸여있던 도청 내부가 과연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중학생 때였을까, 옛 도청 본관 1층에서 5·18 사진전을 했었다. 시내에서 친구를 기다리다가 우연하게 들어갔던 곳이라 연도와 제목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내 눈앞에 펼쳐진 그 엄숙한 장면은 생생하게 기억난다. 낡은 벽을 가득 메운 탄흔, 2층으로 향하는 얼룩덜룩한 계단, 어두운 복도와 금남로가 내려다보이는 2층 유리창. 

나는 그곳에서 짧게나마 80년 오월의 시민군이었고, 두려웠고, 장엄했다. 찰나의 시간은 내 마음에 남아 오월이면 그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대학생이 되고 접한 80년 5월 27일의 영상에서 피 칠갑이 되던 계단과, 총격으로 깨진 유리창은 내가 그날 만졌던 벽면의 시린 감촉과 겹쳐 오월이면 자꾸 나를 망월동으로, 도청으로, 금남로로 불러내는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들어간 옛 도청. 나는 입구에서부터 턱 막히고 말았다. 전시 준비가 덜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국립묘지 안의 5·18 추모관이나, 금남로에 있는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이었다면 여러 기술적인 부분, 미적 요소, 전시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부분들이 명확하다고 평가했을지도 모른다. ‘감탄’이 나올 수 없었다. 내가 아는 오월이 아니었다. 

잘 만들어진 박물관에서 80년 오월을 지식으로 배울 수는 있지만, 그 배움만으로는 오월을 이을 수 없다. 왜 세월호 선체를 온전하게 인양하는 것이 중요한지, 단원고 기억교실을 그토록 없애고 싶어했는지, 옛 전남도청 리모델링을 막고 원형보존 하자는 말이 얼마나 중요하고 필수불가결한 것인지 나는 그날 답사에서 느꼈다. 아무리 번드르르한 설명과 치장을 한다 해도, 울림이 없다. 장엄함이 없다. 비장함이 없다. 그곳은 정말로 잘 만들어진 ‘박제’였다.

그러고 보니 이와 비슷한 것들이 많다. 위대한 국민이 꺼지지 않는 촛불로 대통령을 탄핵하고, 조기 대선, 정권교체까지 만들었다. 새 정권이 이번 대선에서 반드시 기억해야하는 것은 적폐청산에 대한 염원, 위대한 촛불 혁명, 이를 만들기 위해 모였던 수많은 눈물과 웃음들이다. 그 정신이 묻히고 있다. ‘적폐청산’을 외쳤는데 그들이 벼랑 끝에서 다시 기어올라와 ‘아쉽다’고 이야기한다. 

‘국민대통합’이라며 이상한 합당모의, 진보와 보수의 세력 갈등이라고 프레임 씌우는 것, 촛불을 함께 만들었던 사람들끼리 서로 실망하는 것. 그 어떤 멋있는 말로도, 그 어떤 실천이라도 적폐청산을 염원했던 촛불 정신을 담지 못한다면 이제 의미가 없다. 문재인 대통령, 새로운 정권, 촛불이 만든 길. 촛불이 가라고 한 방향 그대로 가시라. 촛불이 가라고 한 대로 우리가 가지 않으면 이 정권교체는 잘 만들어진 박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대학 교육에서 학과 구조조정, 새로운 교육부의 지원사업, 취업, 국가장학금…. 모든 게 우리 대학생들의 미래를 위한 투자이며 방향이라고 이야기한다. 4차 산업시대와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함께형 인재’로 육성되기 위하여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은 알맹이 없는 이야기들을 들어야만 하는 걸까. 부정한 것에 맞서 역사를 만들어왔던 대학생들의 역할을 영혼 없는 대학이 빼앗고 있다. 반값등록금 실현으로 대학생들이 숨 쉬게 하고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으로 파괴된 공동체를 회복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그것이 대학을 대학답게 만드는 길이고, 대학생들이 진짜 인재가 되는 방법이다. 

올해 오월은 원묘역(5·18구묘역)에 더 자주 가야겠다. 그전까지 늘 어렵기만 했던 원묘역에서 힘을 얻는다. 오월의 아픔이 그대로 남아있는 곳, 오월 정신이 열사들의 마음이 오늘까지 이어지는 곳. 그래서 수많은 사람이 행동을 다시 결심하는 곳에서 다시 오월을 잇기 위해 큰 숨 들이마시고 와야겠다.

우리는 박제가 아니다. 우리는 오월을 잇는다. 우리는 여기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