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기념행사/언론보도

[제37주년 릴레이기고]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5·18 교육’

5·18행사위원회 2017. 5. 16. 20:20


정성홍  전교조  광주지부장


“어떤 성실한 사람이 배우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위험한 인물이 될 것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능력이 있으나 배우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폭력적인 사람이 될 것이다.” 공자의 말이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신문배달과 리어카 배달로 제대로 된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하고 일찍이 직업군인의 길로 들어선 사람, 군인으로서의 남다른 성실성과 카리스마로 군대와 국가를 장악하고 이에 저항하는 국민을 강제로 연행하여 가두고, 폭력을 행사하여 다치게 하고, 총으로 쏘아 죽이는 짓을 아무렇지 않게 자행한 사람, 말년이 된 지금에도 당당하게 그때를 회상하는 사람, 바로 ‘전두환’이다.


어쩌면 공자 말대로 우리의 역사에서 ‘전두환’이라는 비극은 그가 ‘제대로 된 배움(교육)을 받지 못한’데 있었는지 모른다.


물론 지금은 누구나 느끼듯이, ‘제대로 된 교육’이 학교를 오랜 시간 다닌다고 해서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단순히 학교 공부를 잘한다고 해서 그가 곧 ‘제대로 교육받은 사람’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최고의 성적으로 서울대에 입학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국회의원을 지내고, 두 번의 장관과 정무수석을 역임했지만, 무려 만 명에 달하는 한 나라의 문화계 인사들을 찍어내는 공작을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한 사람. 조윤선을 보면 알 수 있다.


초등학교 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검사가 되겠다는 꿈을 어릴 적부터 꾼 사람, 서울대에 입학하고 20세에 최연소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박근혜 정부에서 최연소 민정수석을 지낸 우병우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래서 오히려, 역설적이게도, 오늘날 우리 사회의 비극을 낳은 근저에 바로 ‘교육’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해서 우리 교육이 이렇게 되었을까? 학교를 많이 다니면 다닐수록 더 위험해지고, 공부를 잘하면 잘할수록 더 폭력적으로 된다면 지금 우리의 학교와 교육은 도대체 무엇인가? 


이 질문은 곧 ‘우리 사회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 된다. 학교는 어디까지나 사회의 기관이고 오늘날의 교육은 대부분 학교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 사회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떤 사회를 이상으로 삼고 있는가? 어떤 사회를 이루고자 우리는 37년 전 오늘 피를 흘리며 싸웠던가? 지난겨울 금남로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던가? 


그것은 바로 ‘민주주의’였고, ‘자유’였고, ‘민주사회’였다. 곧 ‘민주공화국’으로서 ‘대한민국’이었다. 민주공화국으로서 대한민국을 건설하고 그 속에서 ‘민주시민’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의 이상이었고, 우리 투쟁의 이유였다. 그렇다면 우리 교육은 무엇이어야 할 것인가? 그것은 자명하다.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것. 그것이 우리의 교육이다. 


‘민주사회의 시민’은 식민지 시대의 ‘식민’이 아니고 독재 시대의 ‘국민’이 아니다. 길들여진 식민이 아니라, 자유로운 시민이다. 앉으라 하면 앉고 서라 하면 서고 가만히 있으라 하면 가만히 있는 국민이 아니다. 스스로 판단하고 말하고 저항하는 시민이다. 그래서 조윤선과 우병우가 법정에서 ‘나는 시켜서 했을 뿐이다’라고 말했을 때 그것은 곧 지금까지 우리 교육의 실패를 증언한 것이다. 


‘민주사회의 시민’은 이기적인 개인이 아니다. ‘시민’은 ‘공동체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적 인간’이며, 그래서 민주사회의 시민을 기르는 교육은 일신의 영리와 출세를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교육이 아니다. 민주사회를 살아갈 공공성을 지닌 시민을 기르는 교육이다.


그래서 5·18 민중항쟁은 우리 교육자들에게는 각별한 것이다. 총칼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자유를 위해 저항했던 사람들의 용기, 학살과 죽음의 공포까지 이겨낸 사람들의 연대의 힘, ‘민주시민성’의 생생한 경험이고 모범이다. 


올해도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칠 것이다. 37년 전 오늘, 그분들이 거리에 있었다. 그리고 그분들의 자식들이 작년 겨울 거리로 나섰다. 다음번은 바로 너희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