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기념행사/언론보도

[5·18 37주년 릴레이 기고-촛불로 잇는 오월] 5월 여성, 다시 광장에 서다

5·18행사위원회 2017. 5. 4. 11:12


장세레나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80년 오월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제게 5·18은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방학도 아닌데 학교에 가지 않았다는 것과 아침이면 부모님이 어디론가 나가셨다가 늦은 오후가 되어야 돌아오셨다는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오늘은 동네방앗간에서 밥을 만들어서 보내고, 오늘은 치약, 빵 등을 차에 올려줬다는 말씀을 어머니로부터 들은 기억, 시내 집회에 나갔다가 조금 전까지 함께 이야기하던 사람이 헬기에서 쏜 총에 맞았다는 아버지의 말씀을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집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말씀에 옥상에 올라가서 놀다가 어머니로부터 심한 꾸지람을 들은 기억(아마 헬기에서 기총소사했다는 즈음)과 문간방에 살던 고등학생 오빠가 어느 날부터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중학생이 되어서야 남동성당에서 5·18민중항쟁 관련 영상을 보게 되었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청문회가 열리는 것을 보고 대학생이 되고…. 그렇게 5·18은 완전한 해결은 아니지만 폭도라는 누명은 벗었고 국가기념일로 지정되면서 어느 정도 해결이 된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오월 여성생존자들을 만나뵙기 전까지는….


2013년 6월 오월여성힐링캠프에 참가하면서 오월 여성생존자 선생님들께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33년 만에 처음 갖는 자리이고, 살아남았다는 죄책감과 공포 등으로 인해 가족들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했다는 분, 오월은 생각만 해도 속이 울렁거리며 힘들다고 하시는 분, 마지막 새벽 도청에서 빠져나오실 때의 급박함과 한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신 취사반 분들, 도청진압 다음날 새벽 피로 물든 도청 앞마당을 세제로 청소하는 계엄군을 보며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는 분, 고문실에서 심정지가 와서 죽다 살아나셨다는 분 등등.


책으로, 문서로만 접했던 역사가 살아 꿈틀대는 생명력 있는 역사로, 80년 오월이 한꺼번에 제게 몰려들었습니다. 33년 만에 처음으로 그날의 아픔과 의미에 대해 서로 이야기해볼 수 있는 치유의 자리가 만들어졌다는 사실도 믿기 힘들었고 죄송스러웠습니다.


선생님들과 말씀을 나누면서 이 분들에게 80년 오월은 끝나지 않았구나, 현재까지도 진행되고 있구나 라는 것을 느낍니다. 해마다 오월이 가까워 오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이명현상이 생기고 몸이 힘들다는 신체증상을 비롯한 평생 약과 병원에 의지하셔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고, 국가 유공자로는 되었지만 유공자로 인정해주지 않는 일상에서 당하는 차별이 또한 그것입니다. 세월호와 같은 국가폭력에 희생되는 사람들을 볼 때 고스란히 당신들의 일처럼 힘들어하시는 것을 보며 느낍니다. 게다가 수시로 등장하는 5·18 북한군 개입설에 전두환 부부의 말도 안 되는 자서전 내용은 더할 나위 없겠지요.


지난 겨울 80년 오월의 그날처럼 우리는 또 광장에 섰습니다. 어린 아이들부터 구순의 어르신까지 남녀노소 경향 각지에서 불통과 특권의식으로 국정을 농단한 정권에 맞서 정의를 세우고자, 진정한 민주주의를 세우고자 또다시 광장에 섰고 국민의 힘을 보여줬습니다. 


2017년 5월 13일 오전 10시 30분, 불의에 항거하며 정의를 세우고자 항쟁에 참여했다는 오월 여성생존자들과 함께 다시 5·18민주광장에 섭니다. 그날 진행될 오월여성제는 ‘다시 광장에 서다’ 라는 슬로건으로 여성시민군으로 참여했던 여성들의 다양한 활동에 대해 집중하려 합니다.


80년 오월 당시 여성들은 민중항쟁 전반에 걸쳐 다양하고 주체적인 활동을 했음에도, 여성들의 활동은 주먹밥으로만 부각되어 왔습니다. 목숨을 걸고 가두방송에 나섰던 여성들, 투사회보를 만들어 돌렸던 수많은 여성들, 민원실에서 차량통행증과 유류보급증 및 출입증, 야간통행증 등을 발급하는 민원을 담당했던 여성들이 있습니다. 도청에서 취사를 담당했던 여성들, 헌혈 및 간호뿐만 아니라 입관을 하고 부족한 관을 직접 구하러 다녔던 여성들, 마스크를 만들고 광주의 고통과 눈물을 외부에 알리다 모진 고초를 당하였던 이름 없는 여성들의 눈물과 노고를 기억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런 오월 여성시민군으로서의 다양한 활동을 알리고 자랑스러운 광주의 후예로서, 당당한 여성후배들로서 함께할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 일본군 위안부 졸속합의, 한상균 위원장과 이석기 의원을 비롯한 양심수들, 고 백남기 농민, 고립되어 싸우고 있는 2의 광주인 성주 등 더 이상 국가폭력에 의한 희생이 없는 세상을 위해 함께 행동하겠습니다. 선생님들께서 늘 이야기하시던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이 될 수 있도록 함께 일구어가겠습니다. 힘든 세월 살아주셔서 감사합니다.